
손상된 세포를 죽음으로 이끄는 대표적인 '세포 사멸 유전자'가 만성 스트레스 상황에서 오히려 뇌 신경줄기세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기존 항암제 후보 물질을 활용해 생쥐의 신경줄기세포 사멸을 억제하고 우울·불안 행동을 줄이는 데 성공해 새로운 개념의 정신질환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제시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은 유성운 뇌과학과 교수팀이 뇌 해마 신경줄기세포 사멸을 억제하는 유전자 'p53'의 역할을 규명했다고 1일 밝혔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오토파지'에 5월 18일 게재됐다.
만성 스트레스는 우울증·불안 장애 등 정신 질환과 퇴행성 뇌 질환 위험을 높이는 주요 원인이다.
연구팀은 앞선 연구에서 만성 스트레스가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 영역인 '해마'의 신경줄기세포에 '자가포식 세포사멸'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자가포식'은 세포가 손상된 단백질·소기관을 분해해 재활용하는 과정으로 세포 생존에 도움을 주지만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세포를 죽음으로 이끈다.
이번 연구에서는 자가포식 세포사멸의 핵심 조절 인자로 작용하는 유전자 'p53'을 발견했다. p53은 손상된 세포를 제거해 암 발생을 억제하는 '세포 사멸 유전자'로 알려져 있지만 성체 해마 신경줄기세포에서는 정반대의 역할을 수행했다. p53이 자가포식을 활성화하는 복합체의 활성을 억제해 신경줄기세포의 죽음을 막는 방어막 역할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경줄기세포에서만 p53을 제거한 생쥐를 만성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한 결과 신경줄기세포 사멸이 늘었고 기억력 저하와 우울·불안 행동이 심해졌다.
분석 결과 스트레스 호르몬이 자기포식 핵심 단백질 'LC3'을 이용해 p53을 분해했다. p53이 사라진 세포에서는 자가포식이 과도하게 활성화돼 결국 세포가 죽었다.
p53을 활성화하는 항암 후보약물 'RITA'를 생쥐에 저용량 투여하자 LC3가 p53을 분해하지 않아 신경줄기세포가 보호됐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인지 기능 저하와 우울·불안 행동이 감소한 것도 확인했다.
연구팀은 RITA의 항우울 효과 관련 국내·미국 특허 등록을 마쳤다. RITA는 이미 항암 치료제 후보로 유효성 검증 중이던 약물이기에 안전성 데이터가 상당 부분 확보돼 있다. 항암 치료에 비해 저용량으로도 뇌 보호 효과가 나타나 부작용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평가된다.
유 교수는 "죽음을 촉진한다고 알려진 p53이 해마 신경줄기세포에서는 반대로 세포를 살리는 방어막 역할을 한다는 점을 처음 입증했다"며 "p53 분해 억제 전략은 기존 항우울제와 전혀 다른 새로운 개념의 정신질환 치료제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